롯데百 책임회피‘꼼짝마’… 법원, 이용객‘손 번쩍’

E/S 사고 피해자 대상 12억 배상 판결…롯데 안전불감증 심각


지난 2008년 9월 영등포 롯데백화점 1층과 대합실 3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으로 인해 이용하던 승객 22명이 중심을 잃은 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쓰러졌다. 이때 승객들 중 가장 밑에 위치했던 김모씨(29. 여성)는 20여 명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에스컬레이터 밑으로 8m 이상을 굴러 상체가 불완전 마비되고, 하체는 완전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발생 후 롯데 측은 “에스컬레이터는 관리업체가 전담하고 있으며 승강기시설안전관리법에 의해 관리 주체가 모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한다”며 관리업체도 책임을 돌렸다. 또한 “운전자도 차를 운전하면서 사고를 대비해 보험에 들지 않느냐? 당연히 사고가 나면 보험회사가 피해보상에 관한 절차를 진행한다. 고객들이 목소리만 크면 해결된다고 생각해 오히려 백화점 측이 약자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에스컬레이터 관리사인 오티스엘리베이터와 보험회사인 에이스아메리칸화재해상보험은 “사고 당시 김씨가 에스컬레이터의 핸드레일을 잡지 않아 손해가 확대됐으므로 손해액을 산정할 때 김씨의 과실이 참작돼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해당 관리사의 이 같은 책임 회피에 격분한 김모씨 가족은 에스컬레이터 소유업체인 (주)롯데역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며, 지난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용석)는 “김모씨 등에게 12억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에스컬레이터 주요 부품이 파손돼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관리·보존에 과실이 있다. 롯데는 에스컬레이터의 소유자 혹은 점유자로서, 관리업체는 안전관리를 게을리한 책임이 있어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과실상계를 주장하는 관리업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고, 설령 잡지 않았더라도 20여 명이 굴러 넘어진 사건 경위를 볼 때 김모씨의 과실과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번 판결의 핵심은 승강기 자체결함으로 발생한 사고는 유지관리 책임을 전문 업체에 맡겼다 하더라도 소유자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데 있다”며 “대법원도 최근 이와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으며, 따라서 에스컬레이터 소유자와 유지보수 업체들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서 원고는 4명이며, 이 중 김모씨에 대한 배상액은 11억6천1백19만9천2백29원이며, 2명은 각각 400만원씩, 나머지 한명은 50만원을 받게 된다. 반면, 이번 판결에 대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항소 여부는 사내 법무팀에서 법률적으로 검토한 후 관리업체, 보험회사 등 관련 업체들과 논의해 향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한 시민은 “제품의 오작동으로 한 사람은 하반신이 완전 마비됐다. 하지만 그에 따른 피해보상액이 아까워 소송을 제기하고 항소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기업의 횡포이며, 이용자를 우습게 생각하는 꼴”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관리·책임 뒷전…대기업의 횡포, 이용자가 봉?
롯데그룹 내에서 발생한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롯데 기업은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이 중 롯데백화점은 국내 최대 백화점이라는 명성을 뒤로 한 채 지난 몇 년간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롯데백화점의 ‘안전불감증’에 있다. 당시 김모씨 관련사고 발생 에스컬레이터는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정상운행을 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 후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 1차 조사한 결과 에스컬레이터 기계적인 문제로 밝혀졌으며, 관리원 측에서 결함 개선 후 운행을 해도 괜찮다고 했기에 운행을 재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측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에스컬레이터이므로 정확한 추가 조사까지 완료한 뒤 재개해야 한다고 전달했다는 것. 관리원 관계자는 “법적으로 규정된 정기검사 외에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사고 원인 분석과 수리 이후 검사까지 받은 뒤 운행을 재개해야 한다”며 “백화점 측에도 수시검사까지 완료된 후 에스컬레이터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을 뿐 운행을 해도 좋다고 한 적 없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정작 시민들만 검사도 완료되지 않은 에스컬레이터를 또다시 이용한 셈이다.
문제가 됐던 서울 영등포역사 내 롯데백화점 에스컬레이터는 지난 2005년에도 오작동을 일으켜 79세 할머니가 뒤로 넘어져 사망했다. 당시 롯데 측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에스컬레이터 관리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철도공사 관리 책임이라며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백화점 주차요원 조모씨가 복사한 열쇠를 사용해 에스컬레이터를 작동시킨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내에서 발생한 사고는 이 외에도 지난 2004년 10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리모델링 공사 중 승강기가 떨어져 인부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롯데백화점 울산점에서 정전사태로 백화점 내 영화관을 이용하던 승객들이 엘리베이터 내에서 장시간 갇혀 긴급 구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더욱 큰 문제는 문제의 엘리베이터는 사고 2시간 전에도 똑같은 고장이 발생했으나 사용중단 조치나 충분한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긴급수리만 한 채 재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10층 롯데월드 면세점에서 엘리베이터 옆에 세워져 있던 광고용 철제 간판이 쓰러지면서 4세 여아를 덮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롯데백화점은 ‘사고백화점’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에 해당 전문가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백화점의 특성상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사고 재발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보험을 가입했다고 해서 안전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사전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사고 발생 후 책임회피보다는 대(大)기업 다운 책임감있는 모습이 절실하다.

글 _ 이재현 기자(jhlee@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