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사고 다발지역 인식, 등·하교 “무서워”
게재년월 : 2004년 10월호

지난해 발생한 총 2십4만8백32건의 교통사고 중 14세 이하의 어린이 사고비율이 전체의 약 10%(2만3천8백38건)를 차지, 3백94명이 사망했고 2만9천4백35명이 부상당했다. 올해 경찰청 교통사고통계에 따르면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매년 감소 추세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월등히 많기 때문에 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가정 및 학교에서 교통안전 교육의 중요성 정도와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인지하지 못해 어린 자녀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련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주로 당하는 교통사고 사례 중심의 체험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어린이 교통공원 등의 체험교육 장소도 태부족인 상태다. 게다가 운전자들 역시 어린이 보호의식이 결여돼 있어 과속과 난폭운전을 일삼고 있으며 경찰 역시 스쿨존(school zone,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단속이 약하다.
스쿨존은 초등학교나 유치원의 반경 3백미터 이내 통학로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교통안전시설을 대폭 설치하고 각종 교통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어린이 교통안전 특별 보호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2004년 6월 기준으로 초등학교 4천8백97개소, 유치원 2천4백14개소가 스쿨존으로 지정돼 관리·운영되고 있다.
스쿨존 내에서의 어린이 특별 보호 법령은 지난 1995년 교육부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의 공동부령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 동년 9월 1일부터 발효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주요골자를 살펴보면 ▲스쿨존 내 주·정차가 금지되며 노상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고, 기존 설치된 노상주차장도 이전할 것 ▲차량 운행속도를 30km 이내로 제한할 것 ▲통학로상에 보호구역 표지판, 도로 반사경, 과속 방지시설, 미끄럼 방지시설 등 각종 안전시설을 설치할 것 ▲어린이들의 등·하교시간에 경찰 공무원, 모범 운전자 등을 배치해 어린이의 안전한 등·하교지도를 할 것 등이다.
경찰청은 앞으로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현행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대상을 초등학교 및 유치원에서 특수학교와 1백명 이상의 보육시설에까지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스쿨존 관련 법령, ‘빚좋은 개살구’
그러나 이와같은 관련 법령은 ‘빚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다. 안전연대 등 관련단체에서는 원활한 소통과 보행자 안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 온 ‘교통영향평가제도’ 법규에 어린이, 노인 등 교통약자의 교통안전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법적장치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효율성이나 현실 적용에는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다음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온 스쿨존의 문제점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인도가 없는 통학로 : 현재 대부분의 초등학교 통학로에는 인도는 없고 차도만 있어 어린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보·차도 경계턱 과속방지턱 등 안전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통학로에 인도 또는 가드레일 및 보·차도 경계턱을 설치해 차량과 어린이를 근본적으로 분리시켜야 한다.
■스쿨존 위반시 법적 제재 없어 :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다발지점은 지형적인 요건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지점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 교통사고 다발지점은 어린이 자체가 사고의 독립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많이 모이는 곳, 즉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이 사고 다발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안전시설 설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운전자가 스쿨존의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서 위반할 경우에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 제도나 법규가 아무리 훌륭해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학교 주변 대형 주차장화 :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관리에 관한 규칙 제 8조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구역 내 노상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다” 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학교 주변에는 노상주차장과 불법 주·정차 등으로 대형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또 도심권 주차공간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초등학교 운동장 지하에 대형 주차장을 건설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어린이 교통사고 위험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 보호조항 전혀 지켜지지 않아 : 법에 명기된 보호조항들이 현실적으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선 통학로에 신호등, 경계턱 등 안전시설물이 턱없이 부족하고 8m 미만의 좁은 이면도로를 대부분 양방통행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할 보행공간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
또 학교 주변 통학로 상에 차량속도를 30km 이하로 인위적으로 제한하기 위해서 20m 간격으로 있어야 할 과속방지턱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학교도 있으며, 학교 주변의 대부분의 과속방지턱은 2∼3개 설치에 그쳤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등학교 주변 상점 및 인근 주민들의 이기주의가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것. 초등학교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에 대해 운전자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탓에 시끄럽다는 이유로 과속방지턱을 없애는 사례를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쿨존 운영의 선진 사례
스쿨존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된 선진국의 운영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 미국은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 및 운영기준을 미국 연방에서 제정한 교통안전시설편람(MUTCD 2000)에서 어린이와 운전자 모두가 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통제를 이해해야 모두의 안전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기준없는 절차나 시설물 설치는 보행자와 운전자 사이에 혼돈을 야기하고 사고에 이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것. 교통표지나 노면표시, 신호기 등의 설치기준도 별도로 정하고 있다.
미국 스쿨존의 가장 큰 특징은 등·하교 안전 통학로를 계획하는 것이다. 즉 모든 도로에 교통안전 시설을 구비하는 대신 등·하교 안전통학로를 계획, 어린이에게 안전통학로에 특별히 설치된 횡단보도 등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영국 : 영국은 스쿨존을 시행하고 있지 않지만 학교지역에 대한 도로 및 교통환경 정비에 중심을 둔 교통진정기법(Traffic Calming Measure)을 적용하고 있다.
이 기법은 보차 공존도로와 같은 것으로 교통량과 차량 속도를 감소시키고 자동차와 동일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교통을 지역안전과 환경조건에 조화하는 도로의 공간적 접근을 의미하며 국지도로를 교통진정공간으로 정하고 있다.
학교지역 외곽부의 통과교통 처리를 위한 간선도로는 48km로 제한하고 이와 연결되는 학교권역 내부의 국지도로는 32km로 제한하며 도로폐쇄로 구간별 차량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 주변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고 도로구간 일부를 곡선 처리하는 등 차량의 자연스런 감속을 유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 독일은 학교 주변 3백미터 이내를 스쿨존으로 규정하고 차량속도를 30km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과속 방지를 위해 금속제 방지턱을 이중 설치해 차량감속을 유도하고 있으며 스쿨존 안내표지판을 여러 곳에 크게 부착해 쉽게 식별가능토록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운전자가 스쿨존의 의미를 인지하고 통과시 속도를 규정에 따라 운행한다는 점이며, 초등학교 전체에서 안전교육을 실시,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횡단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 일본은 제1차 교통안전기본계획 기간 중인 1972년 스쿨존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 시행되고 있다. 이후 2001년 일본 전역에 설정된 스쿨존은 3만여 개소로 이 가운데 소학교를 중심으로 한 스쿨존 수는 2만2천 개소에 이른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통학로에 보·차도 경계시설이 미비해 인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스쿨존 주변 지자체 및 경찰서에서 통학로를 표시하는 알림판으로 운전자들을 유도하고 있고, 어린이들이 갑자기 뛰어나오는 사고 예방하기 위해 교차지점 및 골목길 등에 반사거울을 곳곳에 설치하는 등의 세심한 배려로 사고율을 크게 줄였다.

안전연대, 스쿨존 내 교통시설 확충 요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진국에서의 스쿨존은 자발적 참여와 함께 정부차원에서의 강한 규제로 보호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스쿨존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운전자, 어린이들의 의식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행 중 사망률이 70%를 육박할 정도로 보행환경의 열악성과 위험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후진국형 사고유형을 보이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특히 특히 운전자는 스쿨존 내 준수사항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야 할 것이다.
무분별한 불법 주·정차 근절과 노상주차장 전면 철폐 및 학교 운동장의 지하주차장 건설 등의 전면 중단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안전연대 허 억 총장은 “주·정차된 차량 사이에서 어린이가 뛰어나오는 경우는 어린이 사고의 7.1%를 차지하고 있지만 완전히 노출된 장소보다 불법주·정차된 차량 사이에서 무단횡단하는 어린이들의 경향을 감안하면 50%의 사고를 조장하는 결과라고 본다”면서, “초등학교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하는 것 역시 어린이 교통사고를 부추기는 행위이므로 당장 백지화시켜야 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안전연대측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정부가 통학로상에서 어린이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인식, 통학로 안전 표지판, 신호기 등 교통안전 시설물을 대폭 확충할 별도의 예산 마련이 시급하며, 특히 2003년 교통사고 예방기금으로 사용되는 교통범칙금 예산의 상당 부분을 이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해 약 4백여 명의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로 무고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어린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어도 ‘남’이라는 이타적인 사고방식에서 찾아오는 사회적 무관심과 안전불감증에서 빚어진 교통사고의 둔감성이 팽배하게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스쿨존 내의 현행 법규를 준수하면 예상되는 사소한 불편함이 과연 누구를 위한 불편함인지 모두가 스스로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하루빨리 조성돼야 할 것이다.
■글·이재현 기자 / jhlee@liftasia.com